플라톤의 이상주의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그의 비판자들이 때때로 말한 바와 같이, 플라톤은 정치에 있어서 귀족 주의를 주창한 사람이었다. 능란한 변론가나 웅변가가 의회에 미치는 따위 의 영향을 그는 절대 불신하였다. 이상적으로는 국가를 지배하는 진정한 기술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야심가가 너무나 손쉽게 이용하려고 덤비는 사이비 기술이 있다.
플라톤의 이상주의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중 ( 民衆 ) 이 자기가 존경하는 소 크라테스를 불경죄 ( 不敬罪 )로 다뤄 사형 선고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웅변 가들이란 자기 조국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이며, 이 진정한 이익을 증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할지라도, 대중의 편견을 교묘하게 이 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모든 세상사에서는 사이비적 기술과 진정한 기술과의 차이가 분명하다. 요리사가 사람들의 미각을 만족시켜 줄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 진실로 좋은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익숙한 의사뿐이다. 보석 상인이나 화장품 상인은 사람들 의 몸치장을 해줄 수 있을는지 모르나, 무엇이 진실로 그들의 신체에 이로 운가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만 숙달된 체육가뿐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있어서도 인기 있는 연설가는 자기의 웅변으로 투표자의 무리를 마 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정치적 활동의 본래 목적이 무엇 이며 그 목적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노련한 정치가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인간에 관계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의 플라톤의 목표는 사람들을 교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이비적 기술을 버리고 진정한 기술을 도야케 하려는 데 있었다. 진정한 기술이 란 그것들의 원리인 이론의 완전한 이해에 입각해서 도야되는 숙련을 말하 는 것이다.
이해 ( 理解 ) 는 모든 것의 탁월한 면을 밝혀 주는 이데아의 인식에서 시작되며, 서로 연관성을 가진 많은 이데아를 변증론적으로 파악하는 데에서 절정에 이른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진정한 기술자, 즉 익숙한 의사나 숙달된 체육가나 노련한 정치가일 수가 있다. 오직 건전한 교육의 모든 단계를 통과하여 이성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국가를 다스리기에 적 합한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귀족 정치 제창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정치적인 문제나 그 밖의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비판의 기준을 세우는 데 관심을 갖긴 했으나, 그렇다고 채택할 국가의 어떤 강령을 작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도덕적 및 지적 건전성의 중요함을 역설하였으며, 이 건전성 이 사람들 사이에 보급되고 있는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다. 과연 그는 완전 한 국가에 대한 그의 이상 ( 理想 ) 이 어느 기회연가는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현을 예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완전한 교육 제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완전한 국가에 완전한 지배 자가 필요할 것이며, 또 완전한 지배자와 완전한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 는 완전한 교육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플라톤은 실제적인 정세에 있어서 의 딜레마를 알고 있었으며, 그 자신 시라쿠사에서 개혁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였다. 그로서는 사태가 진행하면 자연히 완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완전한 지배자와 확신에 찬 국가가 존재하게 된다면 머릿속에 그리던 완전의 영상 ( 映像 ) 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재빨리도 이 주장에 덧붙여서 이러한 실현 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제시하는 것이 자기의 탐구 목적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의 목적은 오히려 윤리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완전한 국가니, 지혜로운 지배자니, 절제니, 정의 ( 正義 ) 니, 최선 의 교육 제도니 하는 것들의 심상-이와 같은 심상들은 판단의 중 요한 기준을 분명하게 확정해 주는 기본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이 이상 ( 理想 )을 나타내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라나 플라톤은 이상이라는 것을 본래 인간 활동의 장엄한 강령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실현될 수 도 있을 것이요, 혹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 을 실현하도록 하여야 한다. 확실히 그것은 우리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만일 그것들이 아무런 실제적 의의를 가지지 않는다면, 결코 이상이 아니 라 쓸모없는 환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상이란 원래 판단의 규범이다. 플라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은 만일 완전한 원리의 이해에 비추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나 무질서하고 야성적이며, 심지어 악 덕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과 사건들에 있어서나 우 리 자신에 있어서의 선악의 정도에 대한 분명하고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훌륭하게 행동할 수가 없다.
하늘의 이상적 국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지상 의 나라를 볼 때는 오직 지상의 나라만을 보고 있는 사람 식으로는 결코 보 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이상을 알고 있는 이는 자타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이 이상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정의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는 사람은 이 지상의 부정에 대한 자기의 비판이 어떻게 하면 정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아 마도 자기 조국의 부정을 방지하거나 시정할 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증도 주지 않았고, 또 이에 관 심을 기울인 바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제 자신의 생활이 소리 높 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는 어떠한 가능한 개혁이든 열망하였다. 그러나 특히 역설한 주장은, 모든 개혁에 필요한 선행 조건으로서 이해가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자타의 장단점을 바르게 평가함은 하나의 도 덕적 성취이다. 그리고 이 성취를 바탕으로 하여 사람은 사회 질서의 재건을 위한 도덕적 성취를 더 계속해 나갈 수도,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플라톤이 < 국가 편 >에서 논하고자 시도했던 것은 바로 그의 사상의 절정으로서의 이 점이었다. 그는 완전한 이상 국가의 심상을 가졌다고 해 서 실제로 이러한 국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그의 결론은 오히려, " 천상의 이상 국가의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생활을 그것에 따라서 영위해 갈 수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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