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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적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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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문화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중 세 철학에 있어서는 흔히 아리스토텔레스를 ' 그 철학자 ( The Philosopher )'라 는 말로 불렀으며, 단테 ( Dante )는 그를 ' 지자 ( 知者 ) 들 가운데의 스승 ( the master of them who know )'이라고 특징지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은 주로 전체 철학 체계에서 떨어진 여러 독립적 부문에 있어서였다.

자연주의적 전통

그의 모든 저작을 일관하며 여러 분야에 걸친 그의 논구를 체계적인 전체로 연결짓고 있는 중추적 · 지배적 사상 면에서 온 그의 영향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영향을 미친 특수한 부문들도 그것 이후에 다른 철학 속에 들어올 때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진술 속에서 지니고 있던 의미가 상당히 변모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은 먼저 감각 속에 없던 것은 어떠한 것도 지성 속에 없다고 하는 중세 유명론자 ( 唯名論者 : nominalist ) 들의 주장에서, 혹은 모든 관념은 그보다 앞선 인상들의 모사라고 하는 근세 경험론자 ( 經驗論 홀 들의 주장에서 분명히 엿볼 수가 있다.

 

그의 영향은 비록 전도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기는 할지언정, 물질을 가장 바탕이 되는 항구적 실체로 보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물질 변천 과정의 인과적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물론적 주장 속에도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 밖에도 그 의 영향은 플라톤을 원천으로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 윤리학 >에 의하여 보강된 인본주의적 ( 人本主義的 ) 전통 속에 명백히 드러나 있으며, 더욱 정당하게 나타나 있다.

 

그 실례로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 레스를 마치 윤리설 ( 倫理設 )에 있어서는 그들이 동일 노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만일 이러한 개별적 영향을 넘어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적 견해를 간직하고 있는 전통을 서양 문화의 지적 생활 속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역 사가가 있다면 그는 대담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거 부하는 역사가가 있다면 그는 또한 태만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적 입장을 구현하고 있는 전통은 비록 그 천명 ( 蘭 明 )에 있어 단속 ( 断積 ) 이 있었을망정 되풀이해 발견되곤 하였거니와, 그것을 우리는 논의의 대상이 될 말일지는 모르나, 자연주의 ( 自然主義 )라고밖 에는 달리 부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까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 포괄적 범위나 많은 탐구 분야에서 보건대 철두철미 그의 이른바 자연 ( phusis )의 사건 과정에 있어서의 구조나 잠세적 ( 潛勢的 ) 가치의 해명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 자연 ( nature )'이라는 말은 물론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일 자연이라는 것을 아무런 목적과 가치가 없는 한갖 물리 화학적 힘의 체계라고 규정해 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한 의미에서는 자연을 믿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입장은 자연주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영어의 ' 자연'이라는 말을 아리스토텔 레스가 ' 퓌시스 ( phusis )'라는 말에 의해서 생각한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의 철학은 하나의 자연주의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 있 어서의 ' 자연주의 ( naturalism )'라는 말은 ' 자연 ( phanis )'의 의의의 상세한 해 명을 뜻하고 있거니와, 아마도 다음의 세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명제는, 자연은 무한히 많은 실체들 - 그 배열이 새로 바뀜에 따라 무한히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나는 데 지나지 않는 고정된 본체가 아 니라 끊임없이 다양한 변화를 받고 있고, 또 결코 그 모든 가능성이 실제로 남김없이 실현된 일이 없는, 많은 잠세태 ( 潜勢態 )를 지니고 있는 미가공의 질료인 실체들의 방대한 진열이라는 것이다.

 

둘째 명제는, 자연의 실체들이 간직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에는 생명과 정신과 미와 행복, 그리고 미가공인 자연의 질료들이 그들 고유의 목적에 따라 변화하 여 이상의 성취를 실현할 때 거기에 따르는 모든 가치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명제는, 자연 안의 현실태는 생명 없는 진흙 덩어리로부터 빈 틈 없는 인식력과 예민한 심미적. 도덕적 감각을 지닌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생명의 모든 과정들 속에 고루 퍼져 있는 구조상의 제일성 ( 齊 性 )에 따라 생겨나서 얼마 동안 지탱해 나가다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는 인본주의적 윤리 학을 가장 잘 뒷받침하고 정당화하고 입증해 주는 일반적인 형이상학적 입 장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에 관한 인본주의적 이론과 자연에 관한 자연주의적 이론이 말하자면 논리적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다. 근래의 회랍 철학의 비평가들 가운데에서 이 점을 분명히 간파한 사람 은 산타야나 ( Santayzna )였다. "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인간성 ( 人間性 )의 개념이 더할 나위 없이 건전하다.

 

이상적인 모든 것은 자연적 토대를 가 지고 있고, 자연적인 모든 것은 이상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 46 ) 인간이 제 아무리 인간다운 특유성을 지니고 다른 자연물과 관이하다고 할지라도, 그 의 생명은 비록 인간의 독특한 모습을 띠고 있기는 할지언정 전자연을 일 관하고 있는 일반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꼭 같은 말은 자 연 속에 있는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전체로서의 자연이 지향하는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지성적이고 행복한 인간은 확실히 자연이 실현해 온 목적의 하나요, 자연의 어떤 이상적 가능성을 예 중하는 목적의 하나이며, 자연이라는 것이 단지 미가공의 절료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나 도덕적 가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 내 보이는 목적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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