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소크라테스 ( S ö kratis, 469 ~ 399 B. C. 아테네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침. 그는 중류 가정 출신으로서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산파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훈련을 쌓았으나, 결국은 이 직업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부양 방책을 강구하는 데에는 뜻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
그는 결혼하여 수명의 자녀를 두었다. 부인 크산티페 ( Xmmbippe )는 예로부터 남 편을 쥐고 흔든 사나운 여자로 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만일 플라톤의 < 파이돈 ( Phando )> 편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이들 부부의 관계는 서로 의가 두터웠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생애에 걸친 주요한 일은 도덕 문제에 대한 성 찰이었다. 그 는 자기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나 토론에 끌어들여서 공공연히 끈 기있게 이 성찰을 수행해 나갔다. 길 모퉁이에서든 또는 광장이나 시장에서 든, 언제나 그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나 호기심을 갖는 방관자의 무리에 의 하여 둘러싸이곤 하였다. 그는 가차 없는 질문과 풍자적인 비평 때문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 반면에 또 그의 성격이 지니고 있는 매력과 고결한 특징 때 문에 친구도 많았었다. 그는 아무런 저술도 남겨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대 화의 영향은 광범위하고도 깊었기 때문에, 역사상 그는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 한 인물로서 공인되고 있다. 그에 관한 묘사는 그와 사적으로 친숙하였던 세 사람 즉 플라톤 . 아리스토파네스 및 크세노폰에 의하여 전해 오고 있다. 이 세 사람의 묘사는 일치하지 않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것들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확실한가를 결정지을 만한 분명한 근거가 없다.
그러나 플라톤이 전해 준 묘사가 역사적으로 인정되어 온 묘사이며, 따라서 플라톤의 < 대화편 > 속에 동장하고 있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야말로 부당하게 이상화되어 있든 정확하게 그려져 있든 간에, 문학적 및 철학적 전통 속에 살아 있는 소크라테 스인 것이다. 그는 명랑하고 재치가 있었으며, 만찬회나 연회를 즐겼었다. 그 는 드디어 ' 신에 대하여 불경건하며 청년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하였다. 그는 아테네 의회에 의해서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의 재판과 죽음에 관해서는 직접 그것을 목격한 플라톤이 그의 < 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 < 파이돈 >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성격은, 아마도 플라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만, 플라톤의 < 향연 >끝머리에서 알키비아테스의 입을 통해 소개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문헌 속에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 실 면에서 그들을 분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 대화편 > 중의 후기외 몇 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 가운데에서, 대화를 이끌어 가는 주도적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서 말한 것 중에서, 어디까지가 역사적인 소크라테스의 말이며,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문학적 · 철학적 천재에 의해서 보태진 것인가 하는 것은, 오늘날 확신을 가지고 단정할 도리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그럴듯한 하나의 가 정은 플라톤의 초기의 < 대화편 > 들은 그 대체적인 내용이 주로 소크라테스 적이지만 후기의 < 대화편 > 들은 플라톤 자신의 성숙한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이 추진하여 간 성찰의 노선이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플라톤도 또한 이어받은 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일생 동안 머물어 있기에는 너무나도 날카로운 사상가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심어 놓은 싹과 플라톤이 이룩한 발전 사이에는 물론 어떠한 선명한 경계선도 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의 사이의 사상적 구별을 지을 수 있는 가장 유력 한 방법은 아마도 소크라테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평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를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하였 다. 즉 그는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난 지 수년 후에 탄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과는 다년간의 교분이 있었을뿐더러 그 관계가 대단히 밀접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플라톤의 사상에 관해서는 다만 그의 <대화편> 을 읽고 그로부터 얻는 주관적 인상에 의하여 추단 할 수밖에 없는 데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의 직접적 토론을 통해서 배웠으므 로, 오늘날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습득하였으리라는 것은 추측되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 활동 을 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사회에서 논의의 대상이 된 훨씬 뒤의 일이었으며, 그는 소크라테스의 가치를 과장하거나 또는 깎아내리거나 할 아 무런 이유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만일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소 크라테스의 철학상의 공헌의 평가에 대한 공정한 하나의 지침을 갖는 셈이 된다. 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린 평가를 이용하고 그것을 플라톤의 <대화편> 에다 덧붙여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철학사에 있어 소크라테스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문제에 골몰하였다. 그리고 자연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보편적인 것을 윤리적 문제에서 찾았으며, 처음으로 정의 ( 定義 )라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거의 모든 관심을 기울였던 분야에서 볼 때에는 소피 스트와 유사한 바가 있다. 즉 그도 역시 소피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종래의 우주론적 사색으로부터 방향을 돌려, 인간에 관한 문제들의 분석을 자기 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주론적 문제들을 돌아보지 않은 까닭은 소피스트들의 경우와 같았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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