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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엘레아 학파에 대하여 공부하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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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아 학파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저번 시간에 이어 엘레아 학파의 두 번째 내용을 공부해 보자.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견해를 장편시로 발표하였다고 한다.

엘레아 학파

그 제1부는 '진리의 길'로서 엘레아 학파에 대하여 공부하기 - 1에서 논술한 바와 같은 논증을 제시하여 준 것이며, 그 제2부는 '속견의 길'로서 양자택일이 가능한 견해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파르메니데스 자신 배격한 피타고라스의 견해의 개요를 제시하여 준 것이다. 이리하여 이 시의 두 부분은 진리와 속견, 지식과 오류, 실재와 가상, 지성과 감각 사이의 대조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조는 파르메니데스식으로든 혹은 변형된 모습으로든, 후세의 철학적 사색 속에 두고두고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엘레아 학파의 제논은 전통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보급시킨 철학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것으로서 전해 오는 단편들 속에 표명되고 있는 생각들은 모두가 파르메니데스의 단편들 속에 이미 나타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제논의 단편은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꾸밈새 있고 생생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제논의 역설을 이용하여 철저하게 자기의 논지를 밀고 나갔던 것이다.

 

암도 그는 잡다한 대상과 변화의 실재성을 믿으려는 일반 사람들의 자연적 경향에 반대하여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을 옹호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은연중에 일원론대신에 다원론과 변화를 주장한 피타고라스의 설에 반대하여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논의 역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공허한 공간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공간은 그 자신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간이란 것은 여러 부분들로 이뤄져 있는 하나의 연속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들(또는 점들)은 크기를 가지고 있든가 크기가 없든가, 그 어느 쪽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만일 그것들이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은 더 분할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점들이 아니다. 만일 그것들이 크기가 없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아무리 모여도 크기를 가진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리하여 실재로서의 공간의 개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닐 수 없다.
  2. 만일 발이 날쌘 아킬레스와 동작이 느린 거북이가 경주를 하되 출발에 있어서 거북이가 조금이라도 선두에 서 있다면, 아킬레스는 결코 그 거북이를 앞지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왔을 때에는 그 거북이는 아무리 짧은 거리일망정 그 지점으로부터  다소라도 전진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관계는 물론 무난히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아킬레스는 결코 거북이를 앞지르지 못할 것이다.
  3. 공중을 향하여 쏜 화살은 실제로는 움직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화살은 언제나 그 자체의 길이와 꼭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어떠한 것이든 그 자체의 길이와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그 위치에 정지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것은 그것이 있는 곳에 있을 때에는 움직이지 못하며, 또 그것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화살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역설들은 아무리 그 형식이 우스꽝스럽다 할지라도 그 의도에 있어서는 자못 진지하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공간이나 운동의 개념에 대하여, 또는 감각의 증명성에 관한 신뢰성의 관념에 대하여 의혹을 품게 하기 위해서 생각해 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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